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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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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뭔가 색다른 취미를 가진 군주들의 취미 일람. 다만 이는 정말 색다른 것일 수도 있고 왕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2. 아시아[편집]
2.1. 한국[편집]
2.1.1. 고구려[편집]
- 주몽
- 활쏘기: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고구려 건국설화에 따르면 주몽은 이미 어렸을 적부터 직접 활을 만들거나 겨누어 쏠 수 있을정도로 활쏘기를 즐겼다. 이름인 '주몽'도 부여말로 '활을 잘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유리왕
- 활쏘기: 아버지인 주몽을 닮아서 활쏘기를 좋아했다. 다만 궁술이 주몽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는지 어릴적에 참새를 쏘려다가 물을 길어 가던 부인의 항아리를 맞춰서 깨뜨리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 시 짓기: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고구려 시 <황조가>를 지었다.
- 사냥: 너무 사냥을 좋아해 개국공신인 협보에게 비판을 받았다.
- 모본왕
- 인간방석: 앉을 때는 방석으로, 누울 때는 베게로 썼으며 움직이면 죽여버렸다. 결국 저러다 자기가 깔고앉으려던 두로에게 살해당했다.
- 차대왕
- 사냥: 사냥을 그만 하라는 조언을 들을 정도로 사냥을 좋아했다.
- 광개토왕
- 불교: 호전적인 정복군주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를 신봉하여 평양에 9개의 사찰을 건설하는 등 종교적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삼국유사에서는 국경을 순행하던 중 요동에 7층 목탑을 지었다는 고구려의 성왕이 등장하는데, 그 정체를 광개토왕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2.1.2. 백제[편집]
- 아신왕
- 매사냥: 고대 한국에서는 매사냥이 상당히 유행했다. 《일본서기》에서도 왜국에 처음으로 매사냥하는 법을 전파한 백제의 왕족인 주군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매사냥은 한국 뿐만 아니라 매가 서식하는 곳이라면 거의 다 고위층들의 취미로 각광받아왔다. 대륙으로만 따져도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남극과 호주를 제외하면 그 흔적이 항상 존재했다. 한반도에서도 비단 앞서 언급된 고대시대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계속 전통이 이어져서 가까이에는 조선시대에 응방을 운영한 기록이 있으며, 현대에도 사냥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전통과 문화 보존이 목적으로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 개로왕
- 법왕
- 불교: 불교에 극단적으로 심취하여 그물과 사냥도구를 태워버리고 민간에서 기르는 매를 풀어줄 것을 명하기도 했다.
- 무왕
- 음주: 말년에는 노쇠한 탓인지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하는 와중에도 자신은 궁에서 술과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의자왕
- 음주: 아버지인 무왕과 마찬가지로 말년에는 노쇠한 탓인지 음주를 몹시 즐겼는데, 측근이었던 좌평 성충이 간언을 하자 이에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둬 죽게 만들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졌다.
- 여색: 그 악명높은 삼천궁녀 설화는 후대에 지어진 것이라 사실로 볼 수 없지만 그가 여색을 매우 밝혔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슬하에 41명에 달하는 아들들이 있었으며, 일본 및 중국 측의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그가 여인에게 빠져 정사를 망쳤다는 서술이 보인다.
2.1.3. 신라[편집]
- 진흥왕
- 불교: 말년에는 불교에 매우 심취해서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 행세를 할 정도였다.
- 진평왕
- 무열왕
- 혜공왕
- 여장: 본래 여자로 태어나야 할 것을 하늘에 빌어서 억지로 남자로 태어나게 한 탓에 행동거지는 물론 옷차림이 여자같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진성여왕
2.1.4. 고려[편집]
- 태조
- 여색: 29명이나 되는 아내를 거느린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대체로 이를 호족들과의 정략결혼으로 보고 있지만, 별다른 영향력없는 가문의 여식들을 건드리고는 방치하는 등 정치적 목적보다는 단순히 성욕 충족을 목적으로 한 경우도 있었던 듯 하다.
- 목종
- 궁술, 기마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목종은 활쏘기와 말타기를 즐기는 등 무예에 관심이 깊었다.
- 남색: 왕후나 후궁과 사이에서 후사를 보지 못했고 아름다운 외모의 남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목종의 동성연인이었던 유행간은 별다른 재주없이 목종의 총애 만으로도 고위직에 올라 강조의 정변으로 살해당하기 전까지 정사를 농단했다.
- 현종
- 서예, 글쓰기
- 의종
- 수박: 의종은 평소에 무신들로 하여금 수박 경기를 시켜서 이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의민은 천민 출신임에도 뛰어난 수박실력으로 의종의 총애를 받았다. 또한 무신정변의 발단이 된 사건 중 하나인 한뢰의 이소응 하극상도 의종이 관람하던 수박경기 도중 일어났다.
- 격구: 마상에서 즐기는 격렬한 공놀이. 젊은 시절의 의종은 격구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거의 중독자 수준이었다.
- 주색잡기: 의종은 재위 말년에 이르기까지 명승지를 유람하며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쳐서 그를 호종하던 무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이는 결국 무신정변의 한 원인이 되었다.
- 명종
- 충렬왕
- 충선왕
- 독서: 충선왕은 독서를 매우 즐기는 호학의 군주였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원 인종에게 학문을 가르쳤고, 원나라 대도에 만권당을 세워 학자들을 초빙하는 등 학문연구에 힘썼다. 이제현을 비롯한 고려 후기의 이름높은 유학자들 중 만권당을 거쳐간 사람도 많았다.
- 여색: 충선왕은 여성편력이 화려했다. 특히 잘 알려진 것으로는 원나라 공주 출신의 정비인 계국대장공주보다도 고려 출신의 조비를 총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충선왕이 폐위당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 남색: 충선왕은 동성연애도 즐겼다. 그의 동성애인이었던 원충은 충선왕에게 큰 총애를 받았음에도 늘 신중히 행동하여 후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충혜왕
- 공민왕
- 우왕
- 민가에서 사냥하기, 엽색, 각종 난행.
2.1.5. 조선 ~ 대한제국[편집]
- 태조
- 국궁 : 활쏘기를 매우 즐겼을 뿐 아니라 실력도 뛰어나서 가히 신궁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유명하다.
- 사냥
- 격구: 주로 귀의군 왕우, 찬성사 유만수와 격구를 즐겼다.
- 꽃 가꾸기
- 정종
- 격구
- 여행: 태종과 같이 여행을 자주 갔다.
- 사냥
- 태종
- 사냥
- 여행: 퇴위 후 형 정종과 같이 전국 곳곳을 여행 갔다.
- 세종대왕
- 문종
- 군사 연구: 문종이라는 시호에 맞지 않게 무기 및 전술 개량에 많이 공헌했다. 아예 직접 무기를 설계했을 정도.
- 공부
- 국궁
- 서예
- 천문 관측: 문종의 기상 예측은 매우 정확해서 세종이 문종에게 그날의 일기를 자주 물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문종은 나중에 직접 측우기를 설계했다.
- 세조
- 성종
- 매사냥
- 시: 신하들이 지나치게 난리를 쳐서 시를 쓰진 못하고 읽기만 했다.
- 애완동물: 낙타를 들여다 키웠다는 기록도 있고, 연산군이 손을 핥았다며 자신이 키우던 사슴을 걷어차자 크게 역정을 냈다.
- 연산군
- 명종
- 내시 괴롭히기
- 선조
- 광해군
- 효종
- 무예
- 현종
- 온천욕: 사실 현종의 온천욕은 취미라기보다는 고질적인 피부병 때문이었다. 현종은 온천행을 다니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 숙종
- 영조
- 독서: 대체로 공부벌레가 되기를 강요받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학식을 자랑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연륜에 방대한 지식까지 더해져서 말싸움으로는 당할 이가 없어졌다.
- 경연: 조선시대의 왕들은 나이가 들어서는 경연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으나, 영조는 늙어서도 오히려 경연 자리에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며 경연관들을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
- 소설: 영조는 꼬장꼬장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소설 읽는 것을 즐겼는데, 영조는 민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소설을 탐독했던 것 같다. 영조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적에 삼국연의를 읽던 중 관우가 맥성에서 사망하는 대목에 이르자 한 부녀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신하들과 문답을 나눌 때에도 서한연의, 동한연의, 삼국연의 등의 소설의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고, 신하들에게 병에 걸렸을 때에는 가만히 누워서 잠만 자기 보다는 차라리 소설이라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4]
- 정조
- 독서
- 경연: 할아버지 영조보다 한 술 더 떴는데, 경연관 뿐만 아니라 조정 대신들까지 끌고와서 직접 강의를 했다.
- 그림
- 음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비롯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평생을 짓눌려 산 후유증이었는지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희대의 술꾼이었다. 그 자신도 술을 매우 많이 마셨지만, 연회에 참석한 신하들에게도 습관적인 술 강요를 일삼았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 정조가 거대한 필통에 술을 따라 건네주는 통해 속으로 나는 죽었다고 복창을 했다고 한다.
- 흡연
- 무예: 활 실력은 태조 이성계 이래로 조선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명사수였고, 협도 등의 크고 아름다운 무기를 잘 다뤘다고 한다.
- 헌종
- 고종
- 순종
2.2. 중국[편집]
2.2.1. 상나라[편집]
2.2.2. 주나라[편집]
2.2.3. 춘추전국시대[편집]
- 초 장왕
- 주색잡기: 초 장왕은 처음 왕위에 오른 후 3년 동안 파티에 빠져 살았으나 이는 사실 충신과 간신을 헤아리기 위한 술책이었고, 친정을 시작하자 초나라의 대표적인 명군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불비불명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6]
- 위 의공
- 학 사육: 거대한 새장을 만들어 학들을 모아서 길렀는데 여기에 너무도 열중한 나머지 학들에게 녹봉과 벼슬까지 내리는 행태를 보여 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적족이 침략했을 당시에는 병사들조차 "녹봉과 벼슬이 있는 학들에게 싸우게 하라"고 할 정도로 민심을 잃었다.
- 제 위왕
- 현악기 연주: 슬(瑟)이라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 수수께끼: 순우곤과 더불어 수수께끼 놀이로 국정을 의논한 일화가 유명한데, 초 장왕의 일화와 매우 유사하다.
- 주색잡기: 술을 지나치게 좋아했다가 순우곤의 말장난에 휘말려 참교육당한 일화가 전해진다.
- 진 무왕
- 조 무령왕
- 전투 지휘: 조 무령왕은 전국시대의 군주들 중에서도 드물게도 몸소 전장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하는 것을 즐겼으며 실제로 북방의 이민족들을 복속시키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말년에는 외정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까지 했다.[7]
- 조 혜문왕
2.2.4. 진나라[편집]
- 진 시황제
- 업무: 날마다 읽어야 할 죽간 문서의 양을 저울로 달아 정해두고 밤낮없이 업무를 보는 등 일 중독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그날에 정해진 양의 업무를 끝내기 전에는 쉬지도 않았다고 한다.
- 방술: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방술에 심취하여 많은 방술사들을 고용했다. 방술사 서복이 불로초를 구해오겠다며 시황제를 물먹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이다.
- 진 이세황제
- 주색잡기: 일 중독자 수준이었던 아버지 시황제와는 달리 주색잡기와 오락을 광적으로 즐겼다.
2.2.5. 한나라[편집]
- 한 고제
- 음주: 건달처럼 보냈던 젊은 시절에는 음주를 즐기다 못해 외상술도 잔뜩 먹었다.
- 여색: 본래 군벌 시절부터 여색을 즐기기로 이름 높았다.[9] 말년에는 정실인 여후 대신 척부인을 지나치게 총애하여 주창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떡을 치다가 걸려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제위도 척부인 소생의 유여의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했다.
- 남색: 말년에는 여색 뿐 아니라 남색도 즐겨서 적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총애했다.
- 노래: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중 패현에 이르러 고향 사람들과 연회를 즐겼는데, 이때 몸소 축을 연주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당시 그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대풍가"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한 혜제
- 한 경제
- 한 무제
- 한 원제
- 유교: 유학공부에 지나치게 심취해서 현실감각이 떨어졌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아버지인 한 선제조차 이를 걱정하여 그를 폐태자할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 한 성제
- 한 애제
- 남색: 미청년 동현을 동성연인으로 삼아 몹시 총애했다. 나중에는 술김에 동현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는 망언까지 했다.
- 광무제
- 도참: 도참사상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이를 따르지 않는 관료들과 유학자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 후한 영제
2.2.6. 삼국[편집]
- 조조
- 조비
- 탄기
- 시 짓기
- 문학 평론
- 미식
- 조예
- 궁궐 짓기
- 손권
- 독서: 무장의 이미지가 강한 아버지와 형, 그리고 무용 뽐내기 좋아한 것과는 달리 공부도 좋아해서 스스로 어릴적부터 이런저런책들 다 읽어보고 읽어보지 않은건 주역뿐이며 군주가 된 후에는 사서와 병서들도 읽어 내가 아는건 많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 심지어 본인만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배움을 중요시 않던 여몽과 장흠을 불러 이 말을 하며 동시에 공부를 중요시한 공자, 광무제, 조조를 예시로 들며 배울것을 촉구했을 정도.
- 무예: 일신의 무용만은 뛰어난지 합비 공방전에서 장료는 항복한 오나라 장수에게 이런저런 외형과 잘 싸우는 장수가 있던데 그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오나라 장수는 그는 손권이었다고 말했다.
- 사냥
- 음주: 삼국지 최고의 주당. 문제는 술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사가 심하고 술 강요도 심했다. 특히 주사가 매우 심해서 손권 자신도 자신이 술 취했을 때 누구 죽이라고 하면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일러두었을 정도. 실제로 우번이 술취한 손권에게 죽을 뻔 했다.
- 손호
- 주색잡기: 할아버지도 술 좋아했지만 손호는 더 심했는지 손호에게 손권 좀 본받으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 유비
- 사냥
- 노래
- 의복 입기
- 독서
2.2.7. 서진[편집]
2.2.8. 남북조시대[편집]
2.2.8.1. 북조[편집]
- 석륵
- 역사 공부: 비록 본인은 글을 읽지 못했으나, 학자들이 역사서를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 석호
- 사격 : 어릴적부터 새총을 매우 잘 쏘았는데 여기에 너무 심취해서 진중에서 마구 새총을 난사하고 다녀 석륵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장성하고 나서는 활솜씨가 매우 빼어났는데, 제위에 오르고 나이도 장년에 이르자 몸이 매우 비대해졌음에도 그 자리에서 사방으로 활을 쏘아 모두 명중시킬 졍도였다.
- 주색
- 여색: 오호십육국시대의 막장군주들 중에서도 여색을 밝히기로는 제일이었던 사람으로, 민간인들 중에서도 수천에서 1만 정도에 이르는 미녀들을 징발하여 궁녀로 들였을 정도였다.
- 부생
- 주색
- 살인
- 부견
- 탁발규
- 마약: 마약의 일종인 한식산을 즐겼고, 덕분에 말년에는 건강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졌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식산은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보약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는 한식산의 전성기인 위진남북조 시대라 한식산 문제는 북조보다 남조에서 더 심했다.
2.2.8.2. 남조[편집]
- 전폐제
- 독서: 폭군이지만 어릴때부터 독서를 좋아해 아는게 많고 글도 잘 썼다.
- 도굴: 자기 아버지 능을 파헤치려다 그만두고 계모의 능에서 부장품을 챙겼다.
- 강간
- 근친상간: 친누나와 근친상간했으며, 고모부를 죽이고 고모를 겁탈했다.
- 근친능욕: 황제의 권위를 빌려 숙부들을 능욕하길 좋아했다. 어느정도냐면 맘에 안 드는 숙부들을 잡아와서 발가벗기고 가두고 곤장때리고 여물을 먹게 하는 등 온갖 능욕을 가했다. 그 절정은 자기 첩들 중 하나가 임신하자 기뻐하며 기념으로 숙부들 중 가장 맘에 안들던 유욱을 잡아먹으려다가 다른 숙부인 유휴인이 말려서 나중에 잡아먹기로 보류했다.[11]
- 후폐제
- 공예: 어려서부터 모자나 의복 만들기를 잘 했으며, 직접 연장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 토막 살인: 문제는 그 연장으로 사람을 토막내 죽이는 것을 즐겼다.
2.2.9. 수나라[편집]
- 수양제
- 주색
- 유람
- 독서: 의외의 사실이지만 전용 독서실까지 마련할 정도로 책읽는 것을 좋아했다.
2.2.10. 당나라[편집]
- 당현종
- 격구
- 음악
- 시 짓기
2.2.11. 오대십국시대[편집]
- 후당
- 이존욱
- 연극배우 코스프레: 연극배우 놀이를 너무 좋아해 스스로 '이천하' 라는 예명까지 만들어가며 놀았다. 문제는 당시 연극배우가 천하게 여겨지는 직종인데다 적당히도 아니고 나랏일을 제쳐두다시피하며 놀았다.
- 이존욱
- 남당
- 이욱
- 시를 비롯한 문학: 아래의 송휘종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즐겼다. 그리고 나라를 망친 것도 같다. 다만 이욱은 송휘종과는 달리 자기 예술을 위해 나라를 거덜낸게 아니라 그냥 나랏일만 못한 것으로 때문에 그가 죽자 옛 백성들이 슬퍼했다고 하니 송휘종보단 나았다.
- 이욱
2.2.12. 송나라[편집]
- 송태조
- 무술
- 축국: 축국은 현대 축구와는 다른 스포츠다.
- 송태종
- 송휘종
- 서예, 그림 그리기, 기암괴석 수집 등: 덕분에 나라를 아주 작살내었다. 그래서 왕들의 취미의 안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다.
2.2.13. 금나라[편집]
2.2.14. 명나라[편집]
이분야의 끝판왕. 명 4대 암군 참조.
2.2.15. 청나라[편집]
2.3. 일본[12][편집]
2.3.1. 헤이안 시대[편집]
2.3.2. 가마쿠라 시대[편집]
2.3.3. 무로마치 시대[편집]
2.3.4. 센고쿠 시대[편집]
- 고나라 덴노
- 쇼기(?): 확실히 쇼기가 취미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쇼기의 룰을 바꾸어 현대 쇼기의 룰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2.3.5.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편집]
2.3.6. 에도 시대[편집]
2.3.7. 현대[편집]
2.4. 몽골[편집]
2.4.1. 몽골 제국[편집]
- 쿠툴라 칸[14]
- 대식: 하루에 양 한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 음주
- 칭기즈 칸
- 사냥: 스스로도 사냥은 어린 시절부터 해온 일이라 칸이 되어서도 끊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노년에 사냥을 하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야생마 때문에 말이 놀라는 바람에 낙마하여 큰 부상을 입었고 이것이 그의 명을 재촉했다. 궁핍했던 어린 시절에 사냥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생존투쟁의 일환이었지만, 그것이 몸에 배어버린 듯 하다.
- 오고타이 칸
- 뭉케 칸
- 외국어 공부: 어머니인 소르칵타니의 교육열 덕분에 일찍이 페르시아어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다만 중국어와 한문에는 능숙하지 못했던 듯 싶다. 이는 그의 동생인 쿠빌라이 칸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쿠빌라이 칸
2.5. 우즈베키스탄[편집]
2.5.1. 티무르 제국[편집]
2.6. 티베트[편집]
- 달라이 라마 14세
- 시계 수리
3. 유럽[편집]
3.1. 네덜란드[편집]
- 빌럼알렉산더르
- 여객기 조종: 2017년 5월 17일에 네덜란드 일간 텔레그라프(Telegraaf)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1년간 왕실업무와는 별도로 한 달에 두 번 부기장으로 KLM 소속 여객기를 몰았다고 밝혔다. KLM 부기장으로 일하며 자신의 신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18] 원래는 KLM의 자회사인 시티호퍼에서 포거70을 운항했으나 퇴역하며 B737로 면장을 변경했다.
- 셀카 촬영: 워낙에 소탈한 성품이라서, 혼자서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거나 산책을 하는 취미가 있는데, 이때 마주치는 사람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취미가 있다[19] .
3.2. 덴마크[편집]
3.3. 독일[편집]
3.3.1. 프로이센 왕국[편집]
- 프리드리히 1세
- 예술
- 문학
- 작품 수집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 술, 담배
- 군대 사열: 그는 군대를 매우 좋아했다. 자기 병사들을 내 새끼라 부르며 좋아했을 정도. 문제는 그렇게나 사랑하는 병사들이라서 손수 잡아팼다.
- 산책: 이유가 간단한데 짠돌이였던 그에게 산책은 돈 안 드는 취미였기 때문. 다만 시민들은 왕의 산책을 싫어했는데 게으름을 싫어한 그는 길을 걷다가 조금이라도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잡아팼다.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아서 우체국장은 격무로 인해 잠깐 졸았다가 걸려서 근위병에게 두들겨 맞았다. 특히 성인 남자가 대상일 경우 패고 나서 군입대 할래 일 할래? 라고 물어봤다고(...)
- 가혹행위(?): 나름 명군이었음에도[20] 그의 가족조차 그를 싫어하게 만든 원인. 성격부터가 교양과 거리가 멀어 이사람 저사람 잘 때리는 사람인데다 군대식으로 통치해서 사람들을 거칠게 단련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진다는 괴상한 믿음을 가져서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유없이 때렸다. 다른 가족들이라고 전혀 다르지 않아서 딸 빌헬미나는 타국 대사들이 보는 앞에서 죽도록 얻어맞았고 그나마도 사람들이 구해줘서 살 수 있었는데 정작 빌헬미너 본인은 저런 인간의 자식으로 사느니 죽는게 나은데 왜 구해준거냐고 화를 냈고 하는 짓이 이 따위다 보니 모두들 이해하며 동정했을 지경이었다. 가족에게도 이 따위니 가족들의 증오를 받아서 그가 죽자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고 특히 빌헬미나는 아얘 연회까지 열었다(...) 장례식 역시도 프리드리히 대왕 빼고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도 후계자니까 어쩔 수 없이 참석한 것이었다(...)
- 프리드리히 대왕
- 예술, 문학, 철학, 글쓰기
- 클라리넷 연주
- 프리드리히 3세
- 흡연: 문제는 너무 애연가라서 결국 재위 99일만에 사망했다.
- 빌헬름 2세
3.3.2. 바이에른 왕국[편집]
3.4. 스웨덴[편집]
3.5. 영국[편집]
- 헨리 2세
- 사냥
- 여색
- 리처드 1세
- 사냥
- 여색: 호색한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버지를 능가해서 거의 색정광 수준이었다.
- 문학: 직접 시를 짓고 작곡을 할 정도로 예술과 문학에 대한 소양이 뛰어났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음유시인 같은 면모도 있었다.
- 싸움: 당대 최고의 전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도 싸우는 것을 꽤 좋아했다. 왕족의 신분을 숨긴 채로 농부들과 싸우기도 했다.
- 에드워드 2세
- 승마: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아버지를 빼닮아서 당당한 체격에 승마를 즐겼고 솜씨도 뛰어났다.
- 시, 연극
- 도랑파기, 지붕잇기
- 헨리 8세
- 엘리자베스 1세
- 조지 5세
- 우표수집
- 엘리자베스 2세
- 사진 촬영: 가족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나 동물 등 피사체를 가리지 않고 사진찍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긴다고 한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가 촬영한 사진은 혼자서만 간직할 뿐 언론에 공개한 적은 없다.
- 찰스 3세
3.6. 프랑스[편집]
3.6.1. 부르봉 왕조[편집]
- 루이 14세
- 발레(30세 이전): 자기 별명이 발레왕이라는 것을 알고 직접 춤을 추는 것은 그만두었다. 다만 어린 시절 루이 14세가 발레에 몰두한 것은 모후인 안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에게 눌려 국정을 돌볼 권한을 갖지 못한 허수아비 신세에서 오는 울분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 사냥: 늙어서 말을 탈 수 없게 되자 마차를 타고 사슴을 쫓아다녔다.
- 먹방: 실제로 루이 14세는 일요일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만찬을 즐겼다. 이때 국왕의 삶은 달걀 먹는 모습이 굉장히 우아하다고 소문이 나자 일부러 계란을 여러개 까먹고는 했다고.
- 고양이 죽이기: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했는지 전국의 고양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궁전 내부에 있는 화로에 고양이들을 마구 집어던져 불태워 죽이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대신들이 이딴 미친 짓거리는 그만하라며 강력하게 압박을 가한 탓에 나중에는 죄책감을 가지고 그만 두었다고. 반대로 개는 굉장히 좋아해서 본인이 애완견들을 많이 키우고 댕겼다.[22]
3.7. 이탈리아[편집]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동전 수집
3.8. 그리스[편집]
3.8.1. 헬레니즘 제국[편집]
- 알렉산드로스 대왕
- 음주가무: 즉위 초에는 상당히 금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나이가 들수록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고 싶었는지 점차 술을 탐닉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용사이자 친우였던 클레이토스와 언쟁을 벌이다가 격분하여 그를 살해하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열병으로 쓰러져 요절하기 직전까지도 과음을 즐겼다.
- 양성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마냥 성생활이 방탕하지는 않았다. 페르시아 원정 중에는 고관들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미소년들을 바치자 자신을 뭘로 보는 거냐고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던 것 처럼 동성 애인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절친이었던 헤파이스티온과 페르시아 출신의 환관 바고아스 등은 알렉산드로스의 동성 애인으로 추측된다.[23]
3.8.2. 근현대[편집]
- 콘스탄티노스 2세
- 스포츠: 1960 로마 올림픽 요트 종목 금메달리스트.
3.9. 러시아[편집]
3.9.1. 로마노프 왕조[편집]
- 이반 4세
- 독서: 미치광이 폭군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책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다량의 독서로부터 얻은 방대한 지식과 영감은 이반 4세의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책을 수집하는 것도 무척 좋아해서 이반 4세의 도서관에는 온갖 고서가 가득했다.
- 표트르 1세
- 음주: 지독한 술꾼이라 죽기 직전에 요로결석으로 오줌을 누지 못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술을 퍼마셨다.
- 군사놀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총기에 실탄을 장전하고 실제로 전술훈련을 해 첫 전투에서 20여명이 살상된 기록이 있다.
- 예카테리나 2세
- 유명인들과 서신 주고 받기
- 예술품 수집
- 남색
3.10. 불가리아[편집]
3.11. 로마(동로마 제국, 바티칸 포함)[편집]
- 율리우스 카이사르[24]
- 불륜
- 저술: 카이사르는 명장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가 저술한 《갈리아 원정기》와 《내전기》 등은 지금도 라틴어 고전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 티베리우스
- 칼리굴라
- 근친상간: 칼리굴라는 여동생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스캔들이 있었으나 역사적으로 이를 증명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는 칼리굴라가 즉위한 후 원로원에게 자신의 세 여동생에게 충성서약을 할 것을 강요한 일화에서 비롯된 루머로 생각된다. 다만 칼리굴라가 둘째 여동생인 드루실라를 각별히 사랑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드루실라는 사후에 칼리굴라에 의해 신격화되어 디바 드루실라의 칭호를 받았다.
- 클라우디우스
- 역사 연구: 어렸을적부터 역사학을 좋아했고, 할아버지 아우구스투스의 도움으로 당대의 석학이었던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게 역사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덕분에 제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역사학의 권위자가 되어 에트루리아사 등을 비롯한 여러 역사책을 발표했다.
- 네로
- 그리스 문화 애호: 스포츠, 작가 및 작곡 및 가창 등을 즐겼는데, 가창 실력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 여색 : 호색한으로 여자를 수차례 갈아 치웠다. 황후인 옥타비아, 포파이아 등은 결국 모두 네로에게 죽임을 당했고, 마지막으로 메살리나와 결혼했다.
- 남색 : 그리스 문화를 애호했던 만큼 미소년들을 총애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스포루스는 거세를 당한 후 네로와 결혼까지 했다.
- 비텔리우스
- 폭식 : 엄청난 식탐 덕분에 몸이 매우 비대했다.
- 트라야누스
- 젊은 남성들과 함께 음주: 동성애는 아니라고 한다.
- 하드리아누스
- 사자 사냥
- 전차 경주
- 그리스 문화 애호
- 안토니누스 피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 검투사: 학문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스포츠와 검투를 광적으로 즐겼다. 비록 폭군에 암군이었으나 천부적인 완력과 무술실력의 소유자였기에 검투사로서의 실력 만큼은 당대에도 일류급으로 인정받았다.
- 엘라가발루스
- 여장: 남성성을 중요시했던 고대 로마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에 파격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취미였다. 후에 엘라가발루스는 자신을 여성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로마 제국의 절반을 떼어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남색: 당대에도 남색을 즐기는 로마인들은 여럿 있었으나, 대부분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자신보다 연하의 미소년과 사귀는 경우가 절대 다수였다. 그러나 엘라가발루스는 단순히 동성애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그 자신이 바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혐오를 받았다.
- 호노리우스
- 닭 사육
- 테오도시우스 2세
- 그림 그리기
- 필사본 제작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 성가 작곡·작사
- 교리 논쟁
- 요한 바오로 2세
- 베네딕토 16세
- 피아노: 독주회도 가능한 실력
- 고양이 사육
3.12. 튀르키예[편집]
3.12.1. 오스만 제국[편집]
- 메흐메트 1세
- 사냥 [25]
- 씨름
- 메흐메트 2세
- 활쏘기
- 원예: 제3대 킨로스 남작 존 패트릭 더글라스 밸푸어(John Patrick Douglas Balfour, 3rd Baron Kinross) 경의 The Ottoman Centuries: The Rise and Fall of the Turkish Empire 출처. 여담이지만 자신이 정성들여 기른 오이가 사라지자 격노해 정원사를 처형했는데, 정원사의 뱃속에서 문제의 그 오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이가 아니라 수박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 시 짓기: 시인으로서는 아브니(Avni)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뜻은 '돕는 자'. 검색해보면 그가 남긴 시를 찾아볼 수 있다.
- 남색: 그리스나 서유럽 쪽 기록에 따르면.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재상 루카스 노타라스의 아들도 눈에 들었는데, 하렘으로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도 한다. 다만 현대 터키 역사학계의 거두인 할릴 이날즉은 동시대 오스만 측 기록 어디를 봐도 황제가 동성애를 즐겼다는 기록은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 바예지트 2세
- 활쏘기, 활 만들기
- 셀림 1세
- 보석 세공
- 쉴레이만 대제
- 시 짓기
- 보석 세공
- 신발 만들기
- 셀림 2세
- 음주: 음주가 뭐가 특별한가 싶겠지만, 셀림은 무슬림이다. 당연히 금주가 원칙[26] . 뿐만 아니라 셀림이 사망한 이유도 술 때문인데, 술에 취한 채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망했다.
- 공예: 금과 보석으로 초승달 모양의 책갈피를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 무라트 3세
- 시계 조립
- 그림 그리기
- 메흐메트 3세
- 숟가락 만들기
- 페르시아어로 시 짓기: 당대엔 특별한 취미는 아니었다. 수준이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셀림 1세나 메흐메트 2세 등도 페르시아어로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다.
- 아흐메트 1세
- 숟가락 만들기: 그의 아버지도 취미가 숟가락 만들기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숟가락을 대모갑(바다거북 등껍질)이나 상아로 만들었는데 상아조각도 잘 했다고 한다.
- 오스만 2세
- 말 안장 만들기
- 무라트 4세
- 이브라힘
- 거북등껍질 조각
- 메흐메트 4세
- 사냥: 오죽했으면 사냥꾼(Avcı)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였다. 실제로도 정치는 재상 이하 관료들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옛 수도 가운데 하나인 에디르네의 별궁에 주로 머무르며 사냥에 탐닉했다. 문제는 당시 제국의 상황이 이런 일이 허용될 정도의 태평성대였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
- 아흐메트 3세
- 마흐무트 1세
- 도장파기와 보석세공
- 무스타파 3세
- 동전 만들기
- 셀림 3세
- 압뒬아지즈
- 압뒬하미트 2세
- 서예
- 승마
- 수영
- 도자기 공예: 대인기피증때문에 복잡한 돌마바흐체 궁전을 떠나 이을드즈 궁전(Yıldız Sarayı)에 기거했는데, 손님들에게 선물할 도자기를 손수 만들기 위해 공방을 차렸고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참고로 현재도 궁전에 공방이 남아있으며 국영회사로 전환해 영업중이다.
- 목공예: 평범한 시민도 아니고 한 제국의 황제인 자기 자신이 사용했던 최고급 가구들을 몸소 제작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이 사람은 1909년에 폐위당해 1918년에 죽었는데, 말년에 했던 일이 회상록 저술과 목공예였다고 한다.
- 탐정소설 읽기: 탐정소설 전체를 좋아했던 황제로 그가 재위하던 시기에 셜록 홈즈 시리즈가 계속 발간되고 있었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오스만어로 번역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직접 사람을 보내 영국에서 책을 사와(...) 읽을 정도로 애독가였다. 코난 도일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칭찬하기도 했고, 메지디예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황제가 셜록 홈즈의 팬이 되면서, 오스만 제국에서도 셜록 홈즈가 대히트쳤다. 압뒬하미트 2세는 직접 영어 원서를 오스만어로 번역하게 시키는 한편, 본인도 영어 연습을 위해 습작삼아 번역을 하기도 했다. 셜록 홈즈가 1920년대 터키에서 활동했다는 설은 당시 셜록 홈즈 시리즈가 대히트쳤던 것을 반영한 코난 도일의 팬서비스일 가능성도 있다.
- 오페라 감상: 서유럽에서 극단을 초청해 감상하기를 즐겼을 뿐 아니라 오페라 작품들을 오스만 터키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아예 직접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 스포츠: 얄르 귀레시(Yağlı güreş)라는 전통 레슬링을 좋아해 황궁에서 경기도 자주 열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선수는 이스탄불에 머물게 하며 후원했다. 자기 자신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 직접 대련을 하며 실력 평가를 했다고도 한다.
- 그림 그리기
- 압뒬메지트 2세
- 그림 그리기: 1924년, 공화국 정부에 의해 칼리파에서 퇴위된 이후로는 아예 직업화가가 되었는데, 주로 오리엔탈리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4. 중동[편집]
4.1. 이집트[편집]
4.1.1. 고대 4왕조[편집]
4.2. 이슬람 제국[편집]
4.2.1. 압바스 왕조[편집]
- 알 마문
- 과학 연구 후원
4.3. 이집트 왕국[편집]
4.3.1. 무함마드 알리 왕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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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군들도 무사이기 때문에 검술과 도검 수집 등의 취미는 대부분 있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생략.[2] 물론 한 사람이 음식을 이렇게 많이 먹기는 힘들기 때문에 무열왕의 치세가 그만큼 풍요로웠음을 암시하기 위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3] 즉위 후 제일 먼저 죽인 생물이 선왕 성종이 키우던 사슴이었다.[4] 도리어 개혁군주로 손꼽히는 영조의 손자 정조야말로 성리학 원리주의와 복고주의를 신봉하여 문체반정을 통해 옛날의 글쓰기 방식과 다른 소설류 등을 탄압하였다.[5] 당장 일본만 해도 자동차를 탄 최초의 군주는 다이쇼 덴노이다.[6] 먼 훗날의 제위왕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7] 그 자신부터가 호복기사 개혁을 추진할 정도로 군사적 안목이 출중했다.[8] 이에 분노한 혜문앙의 측근 인상여가 그 자리에서 소양왕을 협박하여 분부를 연주할 것을 요구하여 복수한 일화도 유명하다.[9]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했을 당시에도 범증이 항우에게 "유방처럼 여색을 즐기는 놈이 관중에 들어가서도 여자를 밝히지 않으니 이는 분명 야심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정도였다.[10] 영제가 특히 돈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것은 어린 시절에 무늬만 황족일 뿐 매우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요절하는 바람에 5촌 조카뻘인 영제가 즉위하게 된 것이다.[11] 다행히 유욱은 살았는데 그의 막장행각이 심해도 재위가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전폐제가 먼저 죽었다.[12] 쇼군들도 무사이기 때문에 검술과 도검 수집 등의 취미는 대부분 있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생략.[13] 그것도 있지만 당시 사무라이들은 체면 상의 이유로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면, 결투를 벌여서 시비털은 상대를 베는 기리스테고멘을 해야했다. 당연히 그런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어했던 부하들은 덴뿌라를 사러가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한 바 있었다. 결국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게 인적이 드문 오밤중에 복면을 쓰고 변장해서 덴뿌라를 사가는 것이었다.[14] 몽골 제국 이전 인물이지만 카마그 몽골과 몽골 제국은 주류민족은 같으니 서술[15] 칭기즈 칸 조차도 술을 적게 먹는 사람은 봤어도 아예 먹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며, 그런 사람이 있다면 크게 중용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16] 오고타이의 동생인 톨루이도 형 못잖은 주당으로 그 역시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17] 고려가 투항했을 당시에 당 태종도 꺾지 못했던 고려가 항복했다며 기뻐했고, 훗날 손자인 충선왕이 한 고조와 당 태종을 존경한다는 말을 듣자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어떻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18] 차트를 달리는 남자 '재벌들의 괴짜 취미'에서 4위에 랭크됐다.[19] 그 이외에도 취미랄 건 아니지만, 왕의 날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DJ들의 공연이 있자,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춘 적도 있다. 원래 네덜란드가 왕실 관련 행사에 DJ를 부를 정도로 문화적으로 개방된 면이 있지만, 빌럼알렉산더르는 이런 문화를 감안해도 대단히 소탈하고 파격적인 면모가 많다.[20] 주변국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지독하게 절약했고 그걸로 마련한 돈을 군대에 투자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게으른걸 싫어할 정도로 본인은 성실했다.[21] 네번째 부인인 클레페의 앤과 결혼하자마자 사이가 틀어진 이유가 이것이다. 원래는 미인으로 소문난 여인이라하여 결혼을 했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못난이라서 1차로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대로 매력점은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일단은 같이 살기로 했으나, 알고보니 할 줄 아는게 뜨개질 밖에 없었을 만큼 클레페의 앤이 일자무식이라서(클레페 공국은 딸들에게 신부수업 이외의 교육을 거의 안 시킬 정도로 대단히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2차로 멘붕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단히 빡친 나머지, 이 결혼을 알선한 토머스 크롬웰의 목을 날려버리고 이혼해버렸다.[22] 이 점은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하다. 그래도 히틀러는 근대 시대 이후 본인이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창시한 사람답게 비록 고양이를 싫어했어도 루이 14세처럼 고양이들을 불태워 죽이거나 하진 않았다.[23]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놓고 알렉산드로스가 헤파이스티온의 허벅지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고아스는 본래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 3세의 캐터마이트였던 이력이 있으며 게드로시안 사막을 횡단하던 중 춤 경연대회에서 바고아스가 우승하자 알렉산드로스가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24]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사람은 생전에 제위에 오르지는 못했다.[25] 말타고 멧돼지를 쫓다가 낙마를 하면서 죽었다는 설도 있다.[26] 정확히는 포도주가 악마의 것으로 지정되어 금지되었고 일부 허용되는 술도 있었는데, 셀림이 즐겼던 건 포도주다. 레판토 해전으로 이어지는 키프로스 침공도 이 섬이 질 좋은 포도주 산지라는 이유였다고도 전해질 정도.